소방

[소방 22년 차의 현장 비하인드] 기술력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영업의 쓴맛: 군부대 소방 견적과 들러리 비교견적의 씁쓸한 진실

firestorm 2026. 9. 7. 23:20

흔히 현장 기술자의 성공은 탄탄한 기술력, 성실함, 그리고 일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소방업계 현장을 누비며 깨달은 차가운 현실은 결코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소방시설 유지관리 및 공사업에 몸담다 보면 수많은 현장으로 실측과 견적을 나가게 됩니다. 단순한 아파트나 상가 같은 일반 대상처도 있지만, 절차가 까다로운 관공서나 군부대 같은 특수 시설을 마주할 때도 많습니다. 특히 군부대는 보안과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기존 거래처와의 유착이나 관행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입니다. 기술자의 순수한 열정과 시간을 갉아먹는 이른바 '비교견적(들러리 견적)'의 씁쓸했던 실무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1. 신규 거래처 확보를 위한 승부수: 마진을 낮춘 공격적 견적서의 함정

소방펌프실에서의 상담

소방 설비 엔지니어에게 현장 실측과 적산은 단순한 사무 작업이 아닙니다. 대상처의 스프링클러 배관 동선, 펌프 양정, 밸브 규격, 소화용수 배관의 노후도까지 꼼꼼히 눈으로 확인하고 계산해 내야 하는 기술자의 피와 땀이 들어간 시간입니다. 어느 날 전주의 한 군부대에서 소방기계 설비 보수 공사에 대한 견적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보안 검문을 거쳐 부대 안으로 들어가 담당 군무원과 시설 장교의 요구 사항을 일일이 메모하고, 까다로운 현장 조건을 확인했습니다.

군부대는 한 번 안정적인 납품과 공사 실적을 쌓아두면 장기적인 고정 거래처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특수 대상처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새로운 발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기술자의 노무비와 최소한의 마진만을 반영하여, 다른 경쟁 업체가 쉽게 넘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고 합리적인 단가로 소방기계 견적서를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신규 진입 장벽을 뚫기 위해 기술자로서 던진 정직하고도 과감한 승부수였습니다.

2. "예산이 너무 남으니 올려주세요" 황당한 수정 요청과 들러리의 실체

소방견적을 내는 사진

며칠 뒤 해당 부대 담당자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습니다. 견적 금액이 너무 낮아서 부대에서 미리 책정해 둔 관련 시설 보수 예산이 너무 많이 남는다는 황당한 이유였습니다. 예산 불용 처리를 막아야 하니 견적 단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폭 상향해서 다시 보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업계에서 견적을 깎아달라는 요청은 흔해도 금액을 올려서 다시 달라는 요구는 흔치 않기에, 잠시 의아했지만 공사 발주 부서의 편의를 위해 흔쾌히 단가를 조정한 2차 수정 견적서를 작성해 송부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군부대는 이미 오랫동안 일감을 맡아온 기존 거래 업체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관공서 회계 규정상 2개 이상의 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아야 하는 '비교견적(상대견적)' 요건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업체를 불러 현장 실측을 시키고 견적서만 받아 챙긴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처음 넣은 견적가가 너무 낮아 기존 업체의 부풀려진 견적서와 차이가 크게 나자, 기존 업체의 금액을 합리화시켜 줄 '맞춤형 들러리 견적서'를 만들기 위해 단가를 올려달라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현장을 오가며 쏟았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이 통째로 부정당한 것 같아 허탈함과 분노가 밀려왔습니다.

3. 관공서·군부대 비교견적에 대처하는 소방 기술자의 실무 방어 전략

이 씁쓸한 사건은 소방 기술자에게 기술력과 성실함 외에도 '비즈니스적인 냉철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관공서나 특수 기관을 상대할 때는 순수한 호의와 기술적 성실함이 때로는 타인의 행정 절차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20여 년의 경험을 거치며 정립한 들러리 견적 방어 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전 탐문을 통한 수주 진정성 파악: 견적 의뢰가 왔을 때 기존 관리 업체가 있는지, 이번 공사가 긴급 수의계약인지 일반 공개경쟁인지 계약 형태를 먼저 명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 상세 내역서(내역 적산)의 무상 제공 지양: 현장 실측 후 부품 품명, 규격, 수량이 낱낱이 적힌 상세 실행 내역서를 통째로 넘기지 말고, 총액 위주의 간이 견적서나 핵심 단가표를 우선 제시하여 기술 데이터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 비상식적인 단가 수정 요구 경계: 발주처에서 '예산에 맞추어 단가를 상향해 달라'는 요구를 할 경우, 90% 이상 기존 업체의 들러리 맞춤용 작업일 확률이 높으므로 단호하게 선을 긋거나 확약 공문을 요구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술자의 땀방울과 정직한 노력은 어디서든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때로는 현장의 냉혹한 이해관계 앞에서 쓰라린 허탈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와 씁쓸한 경험들 역시 헛된 시간으로 끝나지 않고, 현장을 더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안목과 단단한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주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기술력과 성실함이라는 기본 위에 냉철한 현실 감각을 더해갈 때, 비로소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전문 엔지니어로 우뚝 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묵묵히 실측 테이프를 쥐고 정직한 견적서를 써 내려가고 있을 모든 소방 기술자분들의 노고에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